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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기도문

05. 2025년 설날 가족 예배 대표 기도문 및 설교 내용

by 서대산03 2025. 1. 27.

1. 사도신경 : 나는 전능하신 -

2. 찬양 : 524(갈길을 밝히 보이시니-)

 

3. 기도 : 설날 가정예배 대표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하시고 /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 / 설날 예배로 /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게 하심을 / 감사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 보호해 주신 /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 새해에도 / 주님께 의지하며 /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우리의 가정이 / 주님의 사랑과 화평로 가득 차고, /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 되는 / 가정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설날을 맞아 함께한 / 모든 가족들에게 건강과 평안을 허락하시고,/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게도 /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 함께하길 간구합니다.

새해에는 /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 더욱 주님께 가까워지고, / 삶 속에서 / 믿음의 열매를 맺는 / 한 해가 되게 하여 / 주시옵소서. /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 주님의 빛과 소금이 되어 /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고, /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삶을 /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족 모두가 /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는 / 한 해가 되게 하시고, / 우리의 모든 삶의 / 계획과 걸음을 /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 주님 인도하여 주시고 /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 우리를 구원하신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말씀 : 마가복음 14: 1 -11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5. 설교 : 옥합과 좋은 일에 대하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흉계(1-2, 10-11)

오늘 말씀은 샌드위치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1-2절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방법을 구하고, 10-11절에서는 유다가 이들과 공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가는 의도적으로 그사이 3절부터 9절에 한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모습을 배치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악랄한 죄, 즉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나님을 잡아 죽이려는 남성들을 다루는 두 장면 사이에 힘없는 여성이 힘을 다해 자신을 깨뜨려 붓는 장면을 집어넣음으로써 인간의 악함과 선함을 뚜렷이 대조합니다.

 

(1-2)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고 합니다. 닛산월(히브리달력) 1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바로 다음 날인 닛산월 15일부터 7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성경에서는 무교절과 유월절을 구분 없이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깊이 생각해야 마땅한 민족의 명절을 앞두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오히려 구원자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궁리합니다. 사실 그들은 마가복음 초반부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어찌 보면 마가복음의 내용은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두개인 및 대제사장과 서기관에 이르기까지 당시 쟁쟁했던 종교, 사회 지도층이 합심해서 예수를 죽이는 과정입니다. 그들은 사실 여느 제자 못지않게 열심히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이적을 행하시는 자리를 찾았습니다.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이적을 봤지만 결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처음부터 예수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사렛 출신의 보잘 것 없는 한 청년을 향한 이 살인의 유혹과 충동은 어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실질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이를 대변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 자는 자신이 자신의 주인으로서 옳게 살고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죄인임을 밝혀주실 때 오히려 분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의 주권을 침범하고 부정했다고 느끼며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 옳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죽여야만 자신이 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 뜻과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교만이며 죄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 따라서 결국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사실상 모두 이 부류에 속하여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고 모욕하며 예수님의 죽음을 방조하고 조장합니다.

 

2절을 보면 그들은 이 생각을 잠시 거둡니다. 민족의 해방과 자유를 기념하는 이 명절에 몰려든 인파를 잘못 자극했다가는 큰 낭패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살인 계획은 마침 유다가 내놓은 제안에 따라 성사됩니다.

 

(10-11)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그들은 참으로 예수님을 죽일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는 그들의 계획에 부합하여 돈을 받고 예수님을 넘기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은 순전한 악함에서 나오는 기쁨으로 웃음을 지었습니다.

 

여인의 헌신(3-9)

그런데 이들과 대비되는 전혀 다른 인물이 등장합니다.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 여인은 바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 주간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머무셨으리라 보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감람산 동쪽 경사면에 위치한 곳이며, 시몬은 예수님이 고쳐주셨던 나병 환자로 여겨집니다. 요한복음에 비춰볼 때 시몬이 자신을 고쳐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잔치를 열었고, 인근에 살던 나사로의 남매가 함께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음식이 차려지고 식사를 한창 하는데 한 여자가 다가옵니다. 그 손에는 매우 값진 향유, 즉 순전한 나드 기름 한 옥합이 들려있었습니다. 나드는 인도에서 자라는 감송향의 뿌리와 줄기에서 채취하는 고급 수입 향유였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참고하면 그 양이 한 근, 300 밀리리터쯤 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그 가격이 300데나리온이라고 하는 말씀을 보면 대략 1 밀리리터에 한 데나리온이 되는 매우 귀중한 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여자들은 향유를 모아 결혼 지참금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향유는 온 가족이 피땀 흘려 조금씩 모은 것으로, 어쩌면 선조부터 내려온 가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가져온 그 옥합을 소중하게 품고 다니다가 언제 예수님께 이 향유를 부어드릴까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향유 옥합을 깨뜨립니다. 사실 옥합을 깨뜨리면 어떻게 그 내용물을 예수님께 부었을까 의아할 수 있는데, 원문을 보면 옥합이란 알라바스트론, 즉 설화석고라는 재질로 만든 주둥이가 길게 나온 병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 주둥이 부분을 깨뜨렸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따라버리고 또 쓰기 위해서 뚜껑을 열고 닫거나 다시 사용하도록 조금만 깨뜨린 것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도록 완전히 깨어 예수님의 머리에 흘러내리도록 붓습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소리와 향유가 흘러나오는 소리, 예수님이 가만히 그 향유에 적셔지는 모습,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그윽한 향기로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바로 그 여인을 비난하는 소리였습니다.

 

(4-5)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마가복음에서는 이 말을 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하며,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라고 합니다. 또 요한복음에서는 가룟 유다라고 특정합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화를 내며 말합니다. 아마도 불같이 노를 발하며 여자를 꾸짖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열을 내면서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식사하시는데 왜 그렇게 갑자기 무례히 행하느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바로 향유를 허비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향유를 땅에 버리든 자기 몸에 발라 없애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당시에는 손님을 초대하면 머리에 감람유를 붓는 것이 기본 예의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나름대로 근거를 제시합니다. 삼백 데나리온 이상이 되는 돈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생각은 하지 못했냐는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 일당이므로 단순히 10만원으로 계산하면 약 삼천만원 이상이 되는 큰 돈입니다. 게다가 당시 유월절에는 가난한 자를 돕는 풍습이 있었으므로 어찌 보면 그들의 지적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곳의 분위기가 어떠했겠습니까? 여자는 책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또 자신이 정말 잘못한 것인가 하는 자책하는 마음과 자괴감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6-7)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여인을 괴롭히지 말라, 그가 내게 좋은 일,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기 때문에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지만,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엄숙한 깨달음을 제공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그저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고, 눈먼 자를 눈뜨게 하는 일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몰아오신 하나님 나라가 불러오는 결과일 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참된 구원이 시작되려는 이때 값진 향유를 부어 그 주인공을 경축하는 행위는 예수님께 가장 좋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실용주의적인 사고에 갇혀버립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기쁘게 행하실 일, 즉 예수님께 좋은 일보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더 많이 좋게 하는 일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선행보다도 참된 구원의 주인을 인정하고 기뻐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좋은 일입니다. 이 여인은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참 그리스도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그분이 새 시대의 참 메시아임을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그 여인이 힘을 다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은 두 렙돈 드린 과부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렸습니다. 이는 엄청난 희생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한 푼도 빠짐없이 성인 남성이 일 년을 꼬박 일해야 모을 수 있는 액수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결혼이 어그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재와 미래를 포기하기까지 이 믿음의 행위를 단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바로 그 여인이 내 몸에 향유를 부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장례를 준비했다는 뜻입니까? 일차적으로는 시체에 향유를 부었던 유대 관습을 따라 자신이 죽은 후에 당할 일을 앞서 행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이 참 메시아로서 기꺼이 유월절 양이 되셨음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장례의 준비입니다. 그리고 여인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믿고 의지하는 모든 것을 깨뜨리고 쏟아 냈다는 면에서, 자신의 목을 따고 피를 흘리듯이 옥합의 목을 깨고 그 내용물을 부었다는 면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따라 자신이 먼저 죽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그 여인이 자세히 알지 못했던 그 숨은 뜻과 깊은 의미를 밝혀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여인이 행한 일을 복음이 전파되는 온 천하에 전하라고 하십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예수님이 여시는 새 시대를, 예수님의 죽음을 본받아 복음에 가장 적합하게 경축하며 그 장례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힌 선교사님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전도유망한 사람들이었습니까? 자기 나라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며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다 포기하였습니다. 외국으로, 그것도 조선이라는 오지로 선교를 간다고 할 때, 많은 사람이 그들의 행위가 비이성적이며,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삶을 버리지 말라고 만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선교사들은 자신의 육체와 마음과 영혼이라는 옥합을 완전히 깨어 그 진액까지 아낌없이 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 땅에도 반드시 필요했던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부활의 길을 닦았던 것입니다.

 

그중에 루비 켄드릭이라는 여자 선교사가 있습니다. 이분의 묘비에는 내게 천 개의 생명이 있으면, 모두 조선에 바치리라는 감동적인 문구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불과 24세에 한국에 와서 사역하다가 불과 8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미국에서 오는 데만 1달이 걸리던 시절입니다. 고작 8개월 만에 그가 요절했다는 소식이 고국에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이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라고 연민 어린 듯한 눈빛으로 켄드릭이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어리석다고 치부하고 해석해내지 못한 그 결단과 헌신의 삶을 예수님은 해석해내시고 풀어주십니다.

 

켄드릭은 아마도 자신을 깨뜨려 부은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를 희미하게나마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누리는 사람은 우리이며, 더 나아가 우리도 다 알지 못하지만 복음의 씨앗은 더욱 만개할 것입니다. 우리도 옥합을 깬 여인이나 켄드릭과 같습니다. 믿음으로 대담히 결단하고 했던 일이 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마치 옥합을 깨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듯이 조심스럽지만 결연하게 믿음을 표출했습니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이를 바라보며 어리석다, 왜 그러느냐, 조금만 다르게 했더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소리 지르며, 믿음이라는 명목으로 윽박지르고 화를 내기까지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이 우리가 행한 모든 믿음의 행위를 해석해주시고,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했던 그 시작과 과정과 결말을 모두 조명해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그러하지만, 천국에 가면 믿음으로 행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완전히 풀어주실 때 우리는 그저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보이던 일이 온전히 보이고, 어리석어 잘 모르고 고민했던 모든 일이 완전히 해소됩니다. 그리고 복음의 시점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놀랍게 우리 삶에 역사하셨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이 오기까지 이유를 완전히 알지 못하더라도 오직 믿음으로 결단하고 계속 향유 옥합을 깨뜨리면 됩니다. 그저 받은 사랑에 감사해서 작은 자들을 예수님처럼 섬기며, 내 말과 행동을 의미화할 한 사람을 항상 의식하며 스스로를 주의합시다. 예수님은 아십니다. 예수님은 온 힘을 다한 우리의 헌신을 반드시 해석해주실 것입니다.

 

6. 마침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 설 명절 가족예배를 통하여 / ‘옥합과 좋은 일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 말씀을 나누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 주님의 장례를 위해 / 자신의 전 재산인 / 옥합을 깨트려 / 주님의 장례를 준비했던 여인처럼, / 저희들도 주님을 위한 사랑을 고백할 때 / 믿음의 행동을 할 수 있는 / 저희가 될 수 있도록 /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항상 말씀에 깨어 있게 하시고 / 순종하는 믿음으로 /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며, / 결단할 시간에는 / 결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 우리의 삶이 / 주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고, / 주님이 찾으시는 / 그 예배자가 / 우리가 될 수 있도록 /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기도합니다 아멘!

 

7. 찬양 : 438

8. 축도

지금은 / 죄와 죽음에서 / 우리를 구원하시는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 지금도 통치하시는 /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 성령의 감화와 감동하심과 교통하심이 / 설 예배에 참석한 우리 가족 머리 위에 / 이제로부터 영원히 함께 하심을 /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